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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09.12.31 11:20

한국 역사 ㅡ 대한 제국

조회 수 12995 추천 수 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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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大韓帝國, 영어: The Greater Korean Empire)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부터 1910년(융희 4년) 8월 29일까지 한반도(韓半島)를 비롯, 제주도울릉도, 독도 등 한반도 인근의 도서와 해역을 통치하였던 제국이다. 대한제국의 공식적인 약칭은 대한(大韓), 한국(韓國)이다. 때때로, 대한민국과 구별하기 위해 구한국(舊韓國)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국호

조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제국은 자주성과 독립성을 한층 강하게 표방하기 위해 사용된 의례상·의전상 국호이다. 대한제국의 나라 이름은 ‘대한’(大韓)인데, 이는 ‘삼한’(三韓)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삼한을 하나로 아울렀으므로 대한이라 한다 (여기서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국호를 변경하면서 제국임을 선포하였기에 ‘제’(帝)가 더해져 ‘대한제국’이 되었다. [3]

또한, 조선에서도 이 무렵 대조선국(大朝鮮國)이라는 국호가 보이기도 하므로, 이러한 용례에서도 대한제국의 국호 원류를 상고할 수 있다. 일례로, 1899년 8월 17일에 반포된 대한제국의 헌법적 법전의 명칭은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였다. 한국 또는 대한국을 대한제국이라고 표기하는 것에는, 민족적 자긍심을 감안한 측면도 일부 있다. 왕국이었던 조선시대와 달리 국격(國格)이 제국으로 높아진 ‘대한제국’이 되었기 때문에 수도에 대한 관용적인 별칭 또한 ‘황제가 임하는 제국의 수도’라는 의미에서 ‘황성’(皇城)이라고도 하였다.[4]

제국의 성립

배경

아관파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을미사변아관파천 등 외세로 인하여 열강세력들의 이권침탈 등 나라의 자주성이 크게 위협받게 되자, 자주적인 국가 수립을 염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갔다.[5]

제국의 선포

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연표)  v  d  e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환인
환웅 (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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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진국
삼한

 



 
 
 


 
 
 


   

   
 


고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삼별초의 항쟁
홍건적의 고려 침공
조선
역대국왕 / 조선왕조실록
임진왜란 / 병자·정묘호란
경복궁·창덕궁·종묘·화성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정기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1897년(광무 원년) 고종경운궁으로 환궁하여, 그 해 8월 17일 광무(光武)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 10월 3일 황제 칭호의 건의를 수락하였다. 고종은 자주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널리 표명하고 땅에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원구단(園丘團)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였다.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각국들은 대한제국을 직·간접적으로 승인하였다. 그중 제정 러시아프랑스는 국가 원수가 직접 승인·축하하였으며 영국, 미국, 독일 등도 간접적으로 승인 의사를 표시하였다.[6]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열강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황제로 즉위한 고종은 즉위 직후인 11월 12일 미루었던 명성황후의 국장(國葬)을 치렀으며, 과거에 청의 사대관계의 상징이던 영은문을 허물고, 그자리에 독립문건립에 추진하여 11월 20일독립문건립에 완공하였다.

독립협회

이 부분의 본문은 독립협회입니다.

대한제국 성립하기까지 서로 연합하였던 독립협회수구파정부 형태 문제로 대립하여 갈등을 빚었다. 독립협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반면,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주장하였다. 독립협회와 수구파세력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속에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를 계속 추진하여 1898년(광무 2년) 11월 중추원 관제 개편을 공포했다. 그러나 수구파는 이에 대해 익명서 사건등을 명분삼아 경무청과 친위대등을 동원해 독립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고 조병식을 중심으로 수구파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에 독립협회 세력을 꺾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일본이 수구파 정부에 가담, 독립협회의 운동을 탄압하도록 권고하자 고종이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곧 이어 보부상들이 주축이된 단체인 황국협회만민공동회를 강제로 해산하여 독립협회는 1898년(광무 2년) 12월 해산되었다.

광무개혁

광무개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렇게 수립되어 집권한 수구파 정부는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시정 방향을 제시하고, 갑오개혁, 을미개혁의 급진성에 대해 비판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이어서 법률,칙령의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황제 직속의 특별입법기구인 교정소를 설치하였다. 1899년(광무 3년) 오늘날의 헌법과도 같은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여 황권의 절대성을 명시하였다. 이어서 고종황제는 국정의 주요권한을 황제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전제군주제 강화를 추구하였고, 갑오개혁때 23부로 개편한 행정을 13도로 다시 개편하였다.

이어 토지개혁을 위해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지계(地契)를 발급하여 근대적 토지 소유 제도를 마련하였고, 상공업 진흥책(식산흥업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이를 《광무개혁》(光武改革)이라 하였다. 상공업 진흥책들로 통하여 근대적 공장과 회사가 증가되어 설립되었으며 천일은행,한성은행등 은행을 설립하였다. 또한, 교육진흥책을 추진하여 기술학교와 사범학교 및 관립학교 설립하였다. 이어서 교통, 통신, 전기, 의료등 근대 시설들을 도입하였다.

군사분야에서는 황제의 군권장악을 위해 원수부설치하였고, 서울의 시위대와 지방의 진위대를 대폭 증강하며 무관학교등 설립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경제, 교육, 시설면에서 근대화와 자주적인 국력 증강을 위한 노력이였음에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정책들은 복고주의적인 성향과 집권층의 보수적 성향, 그리고 개혁의 미미한 성과와 열강세력들의 간섭들을 받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는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권 침탈과 국권 수호 운동의 전개

배경

일본러시아와 대립하면서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했을무렵에 한일 의정서를 체결할 것을 강요하고, 나아가 1904년(광무 8년) 8월에 제1차 한일 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외교, 재정 등 각 분야에 고문을 두고 대한제국의 내정에 간섭하였다(고문정치).

이 때에 고문으로 들어온 메가다(目賀田)는 소위 '화폐정리사업'을 통해, 한국의 토종 자본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일본에 의해 제국의 외교 고문으로 위촉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슨은 일제의 침략 의도를 미화하는데 앞장섰다. 스티븐슨은 훗날 장인환, 전명운 의사에 의해 미국 오클랜드기차역에서 처단되었다.

1904년(광무 8년) 한반도만주의 패권을 둘러싸고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러일전쟁은 1905년(광무 9년) 일본이 승리를 거두어, 일본과 러시아 간 포츠머스 조약의 체결로 매듭지었다. 이해 일본은 일방적으로 1905년,제2차 한일 협약의 성립을 발표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성한국통감부를 설치하였다(통감정치).

국권 수호 운동

이에 사회의 각계각층에서는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고, 을사 늑약의 폐기를 주장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민영환은 자결로써 항거하였으며, 조병세 등은 조약의 폐기를 요구하는 상소 운동을 벌였다. 장지연은 주필로 있던 황성신문에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일본과 을사오적을 규탄하였다. 오적 암살단 등이 조직되어 을사오적의 저택을 불사르고 일진회 사무실을 습격하였으며, 민종식, 신돌석, 최익현 등은 의병을 조직해 무장 항전을 벌였다.

또한 독립 협회가 해체된 뒤 헌정연구회같은 개화 자강 계열의 단체들이 설립되어 친일 단체인 일진회에 대립, 대항하면서 구국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초기에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좌절시킨 보안회입헌 군주제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된 헌정연구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905년 이후에는 대한 자강회대한 협회, 신민회 등 개화운동과 독립협회 활동을 계승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애국계몽운동은 교육과 산업, 언론활동 등을 통한 실력 양성운동을 꾀하고자 하였다.

1907년(광무 11년, 융희 원년) 2월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등이 제안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것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고자 제공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들이 갚고자 전개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애국 계몽운동들과 국채보상운동등은 일본제국 통감부의 방해와 탄압으로 결국 실패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권 수호운동들은 민족독립운동의 이념과 전략을 제시, 장기적인 민족운동의 기반을 조성했다는 의의를 가졌으나, 일제의 침략과 지배를 어쩔수없는 현실로 인정하는 오류를 저질렀다는 평가도 지적되고있다. 즉, 그당시 일제에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예속된 상황에서 전개되어 성과면에서 한계성이 노출되었다는것이다.

국권 피탈

한일의정서, 제1차 한일협약, 을사늑약, 한일 신협약, 기유각서, 한일 병합 조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05년 을사 늑약때 외교권을 강탈당한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보호국신세로 전락한다. 고종은 비밀리에 밀서를 작성해 열강세력들에 을사조약의 불법적 체결과 무효임을 알리고자 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4월)의 결과로 일본에 의해 광무황제강제로 퇴위(7월)당하고, 순종이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 로 정하였다. 순종이 즉위한 직후 일본은 한일신협약(7월 24일)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 정부의 각 부처에 일본인 차관(次官)을 두어 대한제국의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였으며(차관정치), 이면 협약을 통해, 8월 ~ 9월에는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1909년(융희 2년) 7월 12일에는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경찰권, 교도행정에 관한 업무를 일본에게 넘겨 주게 되고(기유각서) 이로서 대한제국의 명목상의 국권만 보유하게 된다. 일본은 전국적인 의병의 저항을 남한 대토벌 작전등으로 무력 진압하였다. 마침내 일본은 1910년(융희 4년) 8월 22일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고, 8월 29일 이를 공포함으로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한반도에서 약 4,000년간 지속되던 군주제도 막을 내렸으나 황제가 폐위된 것은 아니며 다만 왕공족 제도의 시행에 따라 황제는 왕(또는 이왕)으로 등급이 격하되었고 일본 황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일본한반도를 식민 통치 지역으로 편입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현재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의 국호를 승계하고 있다.

외교

대외 정책

대외적으로는 해외교민보호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 통상 사무기관을 설치하였다. 1899년에는 대한제국-청나라 사이의 통상조약이 맺어졌는데, 이는 그 이전에 청나라와 불평등한 관계에서 벗어나 대등한 주권 국가로서 대한제국이 청과 맺은 근대적 조약을 체결한것이다.

또한 간도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고종은 간도지역을 함경도 영토로 편입하도록 하였고, 간도 관리사를 설치하여 1902년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하였고, 독도는 대한제국 선포이전 1884년울릉도 개척령을 내려 공도정책 폐기하고, 울릉군으로 승격시켜 독도를 관할하게 하였었다.

이처럼, 대한제국의 대외 정책은 '자주적 중립외교'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친일파와 친러파 관료들의 대립과 열강세력들의 압박등으로 그 실효를 제대로 보이지 못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대한제국은 중립국을 선포하였으나, 일본 제국은 이를 무시하고 대한제국내의 관료들을 협박, 매수하면서 한일의정서를 강제체결등 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중립선언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일본제국은 이어서 1904년 11월에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여 무력 강탈하였고, 1905년 2월에 일본 시마네 현에다가 강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일본령이 되었다.

반면, 간도1909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일본제국의 보호국신세에 있었을적에 일본 제국청나라간도협약을 맺어 일본제국이 남만주 안봉선 철도 부설권 획득을 하고 그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1905년 일본제국제2차 한일협약을 맺게됨으로써 외교권한은 박탈당했고, 일본제국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하였다.

수교한 국가

 대한제국과 수교한 나라들은 다음과 같다.

일본 제국의 국기 일본 제국 - 1876년

청나라의 국기 대청제국 - 1899년

미국의 국기 아메리카합중국- 1882년

대영제국의 국기 대영제국 - 1883년

독일 제국의 국기 독일 제국 - 1883년

이탈리아 왕국의 국기 이탈리아 왕국 - 1884년

러시아 제국의 국기 러시아 제국 - 1884년

프랑스 공화국의 국기 프랑스 공화국 - 188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92년

벨기에 왕국의 국기 벨기에 왕국 - 1901년

덴마크 왕국의 국기 덴마크 왕국 - 1902년

훈장제도 [편집]

1900년(광무 4년) 4월 17일에 칙령 제19호로 훈장조례가 제정되어,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태극장(太極章)·자응장(紫鷹章)의 4종류의 훈장이 제정되었다. (구한국 관보 광무 4년 4월 19일호에 게재). 또한 1901년(광무 5년) 4월 16일에 칙령 16호로 위의 조례를 개정하여(구한국 관보 광무 5년 4월 18일 1864호에 게재) 팔괘장(八卦章)이 추가되었다. 1902년(광무 6년)에는 구한국관보 광무 6년 8월 25일 2287호의 「정오(正誤)」란에 정정하는 형식으로 서성대훈장(瑞星大勳章)이 추가되었다.

덧붙여 이것에 관해서는 동년 8월 12일(15일 관보 게재)에 그에 대한 조칙이 나와 있다. 게다가 1907년(광무 11년) 3월 30일 칙령 20호로 훈장 조례가 개정(4월 3일에 관보 게재)되어 서봉장(瑞鳳章)이 제정되었다. 덧붙여 이것에 관해서는 1904년(광무 8년) 3월 30일(4월 1일 관보 게재)에 조칙이 나와 있다.

1910년(메이지 43년) 8월 29일, 한일합방에 의해서 모두 폐지되었지만, 같은 날 제정된 일본의 칙령 334호에 의해 "당분간" 패용할 수 있다고 정해졌다.

  • 금척대훈장 (金尺大勳章)
  1. 명칭은 태조 고황제(이 성계)의 고사(古事)에 의한다. 단일 등급으로, 대훈위금척대수장(大勳位金尺大綬章)으로 된다. 훈장의 최상위에 위치하며, 황실이 패용하는 것 이외에는 황친(皇親) 및 문무관으로서 서성대훈장을 패용하는 사람이 특별한 훈공이 있을 때 특지(特旨)로 수여된다.
  2. 서봉대훈장 (瑞鳳大勳章)
  3. 명 칭은, 국초(國初)에 있어서의 고사에 의한다. 단일 등급으로, 대훈위서 봉대수장(大勳位瑞星大綬章)으로 된다. 금척대훈장과 이화대훈장의 사이에 위치하며, 황친 및 문무관으로서 이화대훈장을 패용하는 사람이 특별한 훈공이 있을 때, 특지로 수여된다.
  4. 이화대훈장 (李花大勳章)
  5. 명칭은 당시의 국장(國章)인 이화장(李花章)에 의한다. 단일 등급으로, 대훈위이화대수장(大勳位李花大綬章)으로 된다. 훈일등 태극장이 수여되고 있는 문무관으로, 특별한 훈공이 있는 사람에게 특지로 수여된다.
  6. 태극장 (太極章)
  7. 명칭은 국기에 그려진 태극에서 왔다. 8등급으로, 훈일등 태극장으로부터 훈8등 태극장까지 있다. 훈등마다의 기준에 따라서 문무관에게 수여된다.
  8. 팔괘장 (八卦章)
  9. 명칭은 국기에 그려진 팔괘(八卦)에서 왔다. 8등급으로, 훈일등 팔괘장으로부터 훈8등 팔괘장까지 있다. 수여 기준은 태극장과 같다.
  10. 자응장 (紫應章)
  11. 명칭은 태조 고황제의 고사에 의한다. 8등급으로, 공1등 자응장으로부터 공8등 자응장이 있다. 무공에 뛰어난 사람에게 등급마다의 기준에 따라서 수여된다.
  12. 서봉장 (瑞鳳章)
  13. 여성에게 수여되는 훈장. 6등급으로, 훈일등 서봉장으로부터 훈6등 서봉장이 있다. 내명부(內命婦) 및 외명부(外命婦)의 여성, 공주, 옹주 등이 수여 대상이다. 숙덕(淑德)·훈공이 특별한 사람에 대해서 황후의 명(곧 휘지(徽旨))을 거친 후에 훈등마다의 기준에 따라서 수여된다. 이 가운데 훈일등 서봉장은, 황실이 패용하는 것 이외에는 내외명부의 훈2등을 수여한 사람이 특별한 훈공이 있을 때 특지에 의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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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다는달팽이 2010.01.21 15:28
    대한제국이 아니라 소한민국입니다 말제대로 번역하지 ㅈㅈ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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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양 땡초 2011.03.06 09:42
    중국에서 가르치는 것이 소한민국이겠지요 한국에서는 대한 제국이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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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혹되지말자 2010.05.23 02:44
    우리민족은 사실상 제국을 세운적없고 , 엣날부터 소국으로 살앗죠 ,, 제국은 중국이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기 바랍니다, 명성황후두 잘못된거죠 ? 왕후면몰라도 황자는 중국,일본에서만 쓸수 잇엇거든요 조선은 쓸자격없어요 ,부끄럽지만 ,,, 좀제대로 알고 주둥이를 나풀거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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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양 땡초 2011.03.06 09:48
    제국(帝國)이란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를 제국 이라 합니다.

    고종이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명칭을 바꾼것은 중국의 제후국에서 독립국으로 변모한다는것을 뜻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을 계기로 조선은 국왕의 지위를 중국의 황제와 대등한 지위로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우선 용어를 공식적인 칭호에서 군주를 대군주로, 전하를 폐하로 높여 불렀으며, 명령을 칙 국왕 자신의 호칭을 짐으로 부르도록 하였던것 입니다
    또 삼한 통합 의미를..알기나 하고 떠들어 줘서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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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림왕 2011.12.29 2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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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그림자 2013.06.05 00:46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 명성황후의 국장을 치렀으니 황후라는 시호는 추증된것임이 틀림없는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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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그림자 2013.06.05 00:53
    당신이 없다 하면 그 역사가 없어지는건가? 중국 청나라말기 8국연합국에 의해 쪽팔리게 두드려 맞고 서태후가 북경을 빠져나가 도망치던것도 역사가 아닌가? 그 꼴망신 당하고 있는 판에 언제 아무리 예전의 신하국이라지만 조선을 이래라 저래라 할 여력이 있을가 그 상황에서 고종이 당연히 청의 예속에서 벗어나 황제가 될수 있는거지.
    내가 고종이래도 황제가 되고 싶을거요. 그러니 역사는 제대로 알고 인정할건 인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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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혹되지말자 2010.05.23 02:46
    대한제국 참웃겨요, 일본의침략식민주의에서도 대한제국이요 ???? 그렇게 큰제국이 일본한테 점령당해요 ???
    한국사람들 역사를 넘 왜곡하지 맙시다 , 소웃다 꾸레미 터지겟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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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로 2010.06.14 18:58
    에라 이 무식한놈아 니네나라로 가버려 어디서 주둥이 한부로 나불거리냐 딱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이네
    반박할 가치도 없는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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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그림자 2013.06.05 00:55
    당신 여기서 더 나불거려봣자 망신만 하니 조선족이름 팔지 말고 딴데 가서 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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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응 2011.05.27 21:28
    허허~~ 씁쓰름한 시비들이군요~~

    빌어먹을 신라가 꼭 지금의 한국처럼 쳐죽이고 싶게 논 뒤로는 이 민족의 자주성은 없어진지 오라지요~

    그나마 고종께서 처음으로 시기를 잘 만나서 이 한몸의 작은 긍지는 심어주었다만

    요즘같이 분렬되고 전작권도 없는 신세에 력사를 들먹여서는 뭘하며~

    이런 민감할수도 있는 문제를 꺼내놓고 시비하다 싸움이 붙어서야 말이되겠소?

    한국만 내세우지 마시고 7천만 고려인들의 공동으로 되는 아리랑 가락이나 뽑지요~

    우린 그 어느 땅에 살아도 한 형제가 아닙니까?

    이남치하의 일부 무식한 족속들의 중국공격과 배척도 싫지만 내 조상의 조국, 반도를 누군가가 괴롭힌다는것도 싫다오~

    부산맨께서도 그런 수고 마시고 언제 만나 술이나 한잔 하며 아리랑가락이나 하시지요~~~
  • ?
    어허허 2011.09.10 01:34
    중국이 인정해야 황제국인가. 아무리 국적이 중국이라지만
    어떻게 완전히 중국 한족이 가진 역사관을 갖고 있는지?
    당신들 스스로 조선족 조선족 한다면 그 소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란걸 모르시는지.
    그저 당신들은 중국인이니
    영원히 황제국의 인민인것이 자랑스러운가? 그래봤자 한족이 보기엔
    우스울 노릇이다. 자신의 역사를 우습게 여기는 자가 무엇을 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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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역사』 조선족과 고려인의 역사 8 부산맨36 2010.01.01 23763
37 『역사』 외세 침입대한 저항 3 file 부산맨36 2010.01.01 25086
36 『역사』 38선과 한국 전쟁(항미원조전쟁) 4 file 부산맨36 2010.01.01 18772
35 『역사』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 대한민국 수립 3 file 부산맨36 2009.12.31 18110
34 『역사』 8.!5 광복해방(미국,구소련 군정기) file 부산맨36 2009.12.31 11968
33 『역사』 일제 강점기(일본 식민지 시대) file 부산맨36 2009.12.31 26192
» 『역사』 한국 역사 ㅡ 대한 제국 12 file 부산맨36 2009.12.31 12995
31 『역사』 한국의 역사 ㅡ조선 1 file 부산맨36 2009.12.31 16809
30 『역사』 한국의 역사 ㅡ 발해 file 부산맨36 2009.11.05 14576
29 『역사』 한국의 역사 ㅡ 고려 5 file 부산맨36 2009.11.05 13414
28 『역사』 한국의 역사 ㅡ 후삼국 시대((후백제,후고구려,신라) file 부산맨36 2009.11.05 12930
27 『역사』 한국의 역사 ㅡ 통일 신라 file 부산맨36 2009.11.05 11563
26 『역사』 한국의 역사 ㅡ 가야 file 부산맨36 2009.11.05 10703
25 『역사』 한국의 역사 ㅡ 신라 file 부산맨36 2009.11.05 12366
24 『역사』 한국의 역사 ㅡ 백제 file 부산맨36 2009.11.05 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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