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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10.01.01 18:31

조선족과 고려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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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조선족 동포)

조선족
(朝鮮族) 또는 한국계 중국인
(韓國系中國人, 영어: Korean Chinese) 혹은 조선계 중국인(朝鮮系中國人)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사는 중국 국적의 한민족들을 가리키며,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족 분류에 의해서는 (중국내 56개 민족 중의) '조선족'이라고 통칭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의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조선족이란 표현이 일반적으로 널리 쓰인다. 중국에서는 남북을 통틀어 민족명으로서 '한민족'(韓民族)이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계 중국인이 아닌 한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Korean people'을 일컫는 용어로 조선족을 사용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한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중 13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주로 중국 동북(東北) 지역의 3성(省)에 주로 거주하고 있고 특히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취업등을 이유로 주로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과 같은 중국 전역의 대도시로 조선족 인구가 분산되고 있다.





역사

한반도중국의 교류 역사는 오래되어서, 만주 지방의 영토에는 한국인의 조상이 되는 민족들이 할거해 있었다.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민족의 하나인 부여족이 부여를 건국했으며, 기원전 37년에는 부여의 왕자인 주몽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고구려 유민 일부가 말갈족과 연합하여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방, 연해주 지방 등지를 통치하였다. 발해 멸망이후, 고구려계 발해유민의 일부는 고려로 귀의하고 나머지는 만주에 명멸한 북방민족의 지배하에 놓였다.

17세기 말경부터 조선인의 일부가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조는 동북지역을 조상들이 유래한 곳이라 하여 비워두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이주하기 쉬운 여건에 있었다. 이들은 화전등으로 밭을 일구거나, 인삼등을 채집하였다. 1869년에는 한반도 북부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여 많은 조선인들이 건너오게 된다. 따라서 때때로 청나라와 조선사이에 국경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간도라 부르고, 압록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서간도라 불렀다. 청나라 영내로의 조선인 유입은 1885년에는 만주로의 이민 금지가 철폐되어 더욱 증가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일본 제국에 강제합병되자, 일제의 토지수탈의 결과 토지를 잃은 조선 농민,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진 사람들등 다채로운 계층에서 만주나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1931년 7월 2일에는 만주 길림 성 장춘현 삼성포(중국어: 三姓堡 싼싱바오[*])에서는 만보산 사건이 발생하면서 7월 15일에는 김이삼 기자가 길림의 우마황 동아여관에서 피살되었다. 1932년에 오족협화(만주족, 야마토족, 한족, 몽골족, 조선족)를 내건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세워지자, 일본의 이민정책으로 만주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또한 급증하였다. 이 시기에는 간도 지역 뿐 아니라 만주 전역에 다양한 직업의 조선족이 흩어졌으며, 만주국 내의 조선족 인구는 300만이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만주국의 붕괴와 조선의 독립에 의해 다수의 조선인이 귀국하였으나 약 100만이 중국 내에 남았고, 이들이 현재의 조선족의 기원이 되었다.[출처 필요]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자, 중국공산당은 1952년 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길림성 동부의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생겨났고, 1955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명칭을 바꾸어 자치주의 주장(州長)으로 조선족이 취임하였다.

분포

중국의 조선족은 약 2백만 명이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을 포함한 재미한국인(재미동포)의 수에 필적하며,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최대의 한민족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중국 국내의 분포는 동북 지방(만주)에 집중하여, 길림성에는 최소한 120만 명이 거주하며, 길림성 동부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약 80만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 흑룡강성에는 약 45만 명, 요녕성]에는 약 25만 명, 내몽골 자치구에는 약 2천 명이 분포하여,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광저우(廣州), 선쩐(深圳) 등의 대도시에도 진출하여 있다. 각지의 조선족 거주지에는 행정적으로 조선족 자치현과 여러 조선족 마을(향, 진)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동북 삼성의 중심 도시에는 조선족의 학교와 방송국, 신문사[4], 출판사 등이 설치되어, 한국어를 보급하고 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과의 결혼이나 한국 이민을 통해 한국에 귀화하는 사람이 점점 늘기 시작했고, 한국인과의 결혼과 이민으로 그나마 많지 않던 중국 조선족 인구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한족에 동화되는 추세이다.

1992년 한중 국교수립 이래로, 한국인과의 접촉이 증가하였고, 조선족의 대한민국 진출 및, 한국인의 조선족 지역 지출이 점증해 왔다.

대한민국경기도 안산시, 서울특별시구로구 가리봉동을 중심으로 조선족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다.

문화

문화어를 기준으로 하고 중국의 국정에 따라 일부 개편한 중국조선말을 사용하지만 경제발전과 도시화발전에 더불며 중국인과의 교류가 심화되면서 중국어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는 편이다. 또한, 조선족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일찍부터 한족학교에 다니게 되거나, 조선족 커뮤니티에서 떨어져 생활하게 되면, 조선어 구사능력이 의사소통에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조선족의 출신지는 한반도 북부지역인 평안도함경도가 많은 것으로 생각하나, 일제 강점기경상도전라도, 충청도 등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도 많은 주민이 이주했기 때문에 조선족들 사이에서는 자기 출신지역에 따라 집성촌을 이루거나, 지역 방언을 보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족들은 한민족의 동포라기보다는 중화민족, 중국인이라는 국가에서 요구한 정체성을 주로 교육받기 때문에 단일민족, 단일국가관을 가진 한국인과 고국관에 관해 종종 많은 마찰을 빚고 있다. [5] 그래서 다른 재외동포들에 비해 한국인들과 갈등이 잦은 편이다.[출처 필요]

조선족은 어느정도는 의복과 음식문화도 한민족의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복은 명절 때에 입으며 김치, 불고기나 여름 보양식으로서 개고기등을 먹는 습관이 그것이다. 그러나 점점 언어면만 아니라 풍습면에서도 한족에 동화되는 추세이다. 일부 조선족 자녀의 부모들은 민족교육보다는 중국에서 적응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인구 마이너스 증장으로 폐쇄되는 조선족학교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한족학교에 입학시키는 현상도 있다.

종교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지만, 조선 말기에 건너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의 유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각종 의례등을 통해 이를 간직해 오고 있으며, 불교토속신앙이 결합된 신앙도 믿고 있다. 남한 및 미국과 접촉을 통해 천주교를 비롯한 기독교 등을 믿는 사람도 등장하고 있다.

정체성 문제

조선족은 한국인과 동족이라는 생각보다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강하다. 공식적인 출판물에서 중국민족정책의 영향으로 한민족 혹은 조선민족이라기보다는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러한 경위하에 형성된 중국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로 재일한인, 재미한인과 달리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남북도치

  • 북도치 조선족
  • 남도치 조선족

재중 한국인,재한 조선족의 범죄문제

최근에 한중 양국 국민의 상대국 체류자수가 늘어남에 따라, 중국내에서 한국인의 범죄가 늘어나는 동시에, 한국내에서 조선족의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부 조선족이 한국내에서 행하는 전화 금융사기( 소위 "보이스 피싱")와 같이,한중 수교후 조선족의 한국방문을 미끼로 하는 한국인사기와 함께 두 나라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조선족과 한국인사이의 갈등은 심화되고만 만다.

한편 재미 한인, 재일 한인과 차별되는 입국심사로 위장결혼을 통한 불법체류나 유학을 가장한 불법취업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조선족 출신의 유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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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러시아 교포)

고려인(高麗人, 러시아어: Корё сарам (고려 사람)) 또는 고려사람구 소련 붕괴 후의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한반도일대를 지배하던 옛 국가인 고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며, "한국인"과 "조선인"을 절충하기 위해 "고려인"이라 부른다. 이들 국가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이 포함된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남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부근, 코카서스, 남부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고려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들 공동체는 19세기말의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에 기원한다.

사할린 섬에도 독립된 한민족 사회가 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의 이주민으로 구성된 러시아 본토의 공동체와는 달리, 사할린의 한민족은 주로 1930년대1940년대경상도전라도에서 이주하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로 사할린의 탄광에 끌려가 노역하였다.


ㅡ극동 러시아와 시베리아 강제 이주

역사:1800년대조선은 국정이 혼란하여 소수의 양반들이 대다수의 토지를 독점하게 된다. 가난한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청나라가 국경을 막고 있어서 러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많은 농민들이 시베리아로 이주하였고, 1800년대말에는 그 수가 급증하여 1869년에는 조선인이 프리몰스키 크라이의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성되기 이전에 극동 러시아의 조선인은 러시아인보다 많았으며, 지방 관리는 그들에게 귀화를 종용하였다. 1897년의 러시아 제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전체에서 조선말을 하는 사람들이 26,005명(남자 16,225, 여자 9,780)이었고[2], 1902년에는 32,000명을 넘었다. 여러 도시에 고려인 마을과 고려인 농장이 있었다.

1900년대 초에는 러시아와 조선 모두 일본과 대립하였다. 하지만, 1907년 러일 전쟁이 종료되면서 일본의 요청에 의해 조선인을 배척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이로부터 조선인의 농장은 몰수되고 조선인 노동자는 해고되었다. 동시에, 러시아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 조선의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시베리아와 연해주, 만주로 피신하였다. 10월 혁명동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의 성장과 함께, 시베리아는 재소련 조선인의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독립군 양성의 터전이 되었다.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모인 조선의 지도자들이 3.1운동을 지원하였다. 이 마을은 군대의 보충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근거지가 되었고, 1920년 4월 4일에는 일본군이 이 곳을 공격하여 수백 명이 사망하였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기독교(러시아 정교회)를 받아들이는 등 러시아 문화에 상당한 적응을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땅에서 수탈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이주의 가장 큰 이유였다.

강제 이주

1937년에서 1939년 사이, 스탈린은 172,000명의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시켰다.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명목이었다. 여러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추방되고 유배되었고, 이주 도중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글라스노스트 이전까지는 이주에 대해 발언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이주민들은 협력하여 관개시설을 설치하였고,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국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는 한국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주 후,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환경을 열렬한 교육열과 억척스러운 삶으로 극복, 러시아 소수민족유대인과 더불어 돈과 학식이 있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

연구에 따르면, 2002년에 약 470,000명의 고려인이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며, 그 중 198,000명이 우즈베키스탄에, 125,000명이 러시아, 105,000명이 카자흐스탄, 19,000명이 키르기즈스탄, 12,000명이 우크라이나, 6,000명이 타지키스탄, 3,000명이 투르크메니스탄, 5,000명이 기타 지역에 살고 있다.

러시아

2002년의 인구조사에서는 148,556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며, 남자가 75,835명, 여자가 72,721명이었다. 그 중 1/4 정도는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에 거주한다. 그 곳의 고려인들은 그 이주 경로가 다양하여, 1937년의 선대의 강제이주로부터 돌아온 독립국가연합 국적의 33,000명 외에, 약 4,000~12,000명의 북조선 이민자도 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나 중국 소수민족 출신의 고려인 또한 정착, 투자하며, 국경 무역에 참여하고 있다.

유럽 및 기타 지역

우크라이나2001년 인구조사에서 12,711명이 스스로 고려인으로 인식하였는데, 이는 1989년의 8,669명보다 증가한 것이다. 가장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곳은 하르키우, 키예프, 오데사, 니콜라에프, 체르카시, 르포프, 루간스크, 도네트스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자포로지에, 크리미아 등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인사회는 하르키우에 위치하는데, 약 150명의 한인 가족들이 거주한다. 최초의 한국어 학교가 1996년 이들의 관리 하에 개교하였다.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대부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에 거주한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문화는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Almaty)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 곳에서는 중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 신문(고려 신문)과 한국어 극장이 운영된다. 카자흐스탄의 인구조사에서는 1939년 96,500명의 고려인이 기록되었고, 1959년에는 74,000명, 1970년에는 81,600명, 1989년에는 100,700명, 1999년에는 99,700명이었다. 몽골에는 약 5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농촌 지역에 넓게 흩어져 있다.

무국적 고려인

구 소련 붕괴 이후 일부 고려인들은 무국적자가 되었다. 구 소련 시절 연방이었던 나라들이 러시아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국적을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몰랐거나, 서류를 분실하거나, 거주자로 등록하지 않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등으로 신청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기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이익은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구 소련 지역에는 현재 전체 고려인의 10%에 해당하는 약 5만의 무국적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최근 한국대사관의 신분 증명이 있다면 자국 내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회복을 지원해줄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한국에의 회귀

약 1만 명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다.

문화

중앙아시아로의 이주 후, 고려인들은 주변의 사람들과는 다른 양식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관개시설을 만들고 지역 일대의 쌀 재배 농가가 되었다. 주변의 유목민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으며,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고려인들은 곧 한국의 전통 의상을 입지 않게 되었지만, 중앙아시아인들의 옷보다는 서구의 복식을 채택하였다.

사용언어

한국어를 쓰고 있다. 이들이 쓰는 한국어는 고려인들의 한국어나 중앙아시아 한국어를 사용하며, 러시아어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언어, 우크라이나어까지 섞인 말을 쓴다. 2세대 후부터는 러시아어만 알고 한국어는 모르는 고려인들이 생겨났다.

고려인 중에도 일부는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유명한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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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ㅡ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쬐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 언제든지 오실 줄만을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profile
    부산맨36 2010.01.01 18:36
    조선족과 고려인 존재 계기의 역사는 조선의 일제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의 기나긴 연합군과의 전쟁으로 인한 조선 전역에서의 일제의 수탈 강탈로 인해서 조선인들의 배고픔이 심각해지면서 만주와 연해주 이주 계기도 있지만 조선 국내에서의 무장 독립운동 어려움도 한 몫을 했다. 무장 독립운동이 국내에서 국외(만주와 연해주)로 옮겨지게 된것이다.
  • profile
    apple707 2010.06.06 18:36
    정체성에 대해서는...제 개인 소감을 간단히 적어봐요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을 비유하여 얘기하자면 마치 "엄마 없는 고아~"라고 해야할가요~

    중국정부에서도 대외적으로는 다민족을 포옹하는 정책이지만, 정부에서는 아무리 인재라도 중용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물론 민간인으로 살아감에 있어서는 오히려 행복한 면이 많은것 같습니다.

    이에 한국정부에서나 국민들은 재일,재미교포에 대해서는 ...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져~
    재일,재미교포나 중국교포나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를 인정해주고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있죠~
    그러므로~ 재일,재미교포가 한국에 와서 "I'm korean"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수 있겠죠~

    반면에, 중국교포에 대해서는 한국국민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셨을가요~
    한마디로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자면 한국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이 컷었던거죠~
    중국교포들이"I'm korean 혹은 I'm korean chinese"가 아닌 "I'm chinese 혹은 I'm chinese korean"이라고 말하는것에 대해 나쁘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친구중에 누군가 이러더군요~
    " 나에게 한국이 좋냐 중국이 좋냐 묻지 마라~
    한국은 나의 아버지요.
    중국은 나의 어머니다~"

    이런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중국교포들의 정체성을 논하기전에~
    중국교포들의 칭호부터 바꿔주길...
    조선족은 중국정부가 민족구분을 위해 명명해준 이름이지~
    고국사람들이 우리를 부를때 중국정부와 똑같은 입장으로 조선족으로 부른다는건~
    우린 한민족이 아님을 설명하는거겠죠~

    하지만, 07년부터 한국정부에서는 아세아에 흩어져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재외교포들을 상대로
    현지방문하여 어렵게 살고 있는 현실을 취합해서 H-2 취업비자의 건의를 국회에 제출해준 덕분에
    많은 교포분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죠~
    예전과 달리 늦게나마 이런 정책을 도입시켜준 정부에 감사의 마음은 가슴에 품고 있답니다~



    이상은 간단한 제 소감을 몇자 적어보았어요~
  • ?
    한국을알아 2014.08.17 15:41
    일본교포. 미국교포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지 않으며. 중국땅이라고도 하지않습니다. 또한 미국 일본교포들은 자신이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중국교포들처럼 중국인라 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im korean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만약에 중국과 한국이 전쟁이 나면 교포들은 중국편에서서 한국민에게 총을 겨눌것입니다. 님의 말대로 어머니나라라는한국한테 말입니다. 반대로 일본과 미국과 한국이 전쟁하면 미국 일본교포들은 한국을 위하여 총을 들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쟁때 흐어져있는 이스라엘민족들이 자국전쟁에 적극 참여했고 이스라엘도 자국의교포들을 절대 버리지않습니다 .몇대가 지나도 이스라엘사람으로 인정해줍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가 살고있는 나라가 한국이든 중국이든 자기나라는 이스라엘이라 생각합니다 몇대가 지나도 말입니다. 한국인 중국교포 일본교포 미국교포 같은피가 흐릅니다. 한국인들은 자기민족에게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하는 중국교포를 보고 한국인들은 뭔생각하겠나요 한국 세모녀 자살사건아시죠 . 한국인들은 취업못해서 수많은사람들이 자살을합니다 .한국에 300만이 넘는 중국인이 와서 그중100만이 취업합니다 비공식적으로 200만이 육박한다고하더군요 .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중국국적에 중국인들때문에 내 어머니 내 누나 내 여동생이 일자리 없어서 자살하는데 ...일본 미국 교포 차별을 말하기전에....중국교포들이 가진 생각때문에 차별을 한다는 생각을 못해보셨나요. (돈벌려고 입국할때는 교포라고 하면서 돈은 당신들에 나라 중국에서 다 쓰고 중국은행에 저금하잖아요) 대한민국은 님들의 일자리를위해 자신들에 핏줄이 죽고있어도 당신들에게 호의적으로 f2 f4비자를 주고있읍니다 . 그렇니까 불평을 하기전에 한국을 위해 뭘했나를 생각해보세요 ..
  • ?
    518518518 2011.05.05 15:25
    우에 선생님이 적은글이 우리 조선족의 동성입니다. 한국정부에서는 중국교포라하지만 민간에서는 중국인이라고 조선족과 한족을 같이 표현합니다. 이럴때는 자신이 위대한 중국사람임을 더욱강하게 느낍니다.
  • ?
    킹콩 2012.05.16 15:09
    위대한 중국사람?
    그럼 중국호적에서 민족을 한족으로 고쳐버리지?진정 위대한 중국인 답게.
    사실 한국인들은 중국교포,중국동포,조선족 크게 신경쓰지두 않는데
    조선족들은 혼자 떠들기 좋아하지.
    교포라서 한국나오기 쉽구
    한국와 그나마 돈 좀 벌수 있는걸 사실 우린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 ?
    심심한사람 2012.05.22 13:32
    한국은 놀부네 집 북한은 흥부네 집 그리고 조선족을 위해서 일을 시킨다고는 하지마세요.
  • ?
    프로페셔널 2012.07.13 18:17
    조선족을 위해 일을 시킨다고 말하는사람들은 한국사회에서도 듣기힘든말입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로써는 인권비가 저렴하고 똑같이 열심히 일해주기때문에
    그저 같은 조건이면 가급적 조선족을 채용하는것이죠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누굴위해일을
    시킨다라는말은 한국사람들끼리도 잘하지않는말입니다 직원과사장은 절대우호관계여야만되요,,
  • ?
    반짝 2015.08.14 19:35
    위에 한국을 알아 이분은 잘 모르시는것 같은데 미국교포나 일본교포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으면 당연히 국적을 부여해준 나라를 말합니다 즉 미국국적을 가졌으면 미국사람이라 얘기하고 미국교포라고 합니다.그리고 정말 미국대 한국 전쟁 일으나면 어느 나라에 총을 겨눌지 미지수 입니다. 조선족도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 국적 가졌기때문 당연히 중국사람이죠 단 또한 중국교포입니다.이분들도 사실 중국과 한국 전쟁 일으나면 어느 쪽으로 총을 겨눌지 누구도 잘 모릅니다. 그리구 백두산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백두산이 한국과 일본사이에 있었다면 한국사람들은 백두산이라 할것이고 일본교포들은 아마 어릴때부터 부르던 습관으로 백두산을 일본식으로 불렀을것입니다. 그런것을 가지고 조선족을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저 또한 한국국적 가졌기때문 한국 사람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중국동포에게 처음부터 한국국적 부여해주고 탈북민들과 같은 정책을 했드라면 오늘날 한국을 모국이라고 다 인증을 했을것입니다.그러나 대다수 중국교포들은 한국에 와서 멸시와 냉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취급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미국 살다가 한국와서 외국인 취급당하고 멸시와 냉대를 당하면 더 이상 이나라 사람 아닌 본인을 인증해주는 나라 사람으로 되고 싶을것입니다. 또 지금 많은 한국사람들이 중국에서 자리잡고 살고 있습니다. 이사람들 현지동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이 또한 부정할수 없는 같은 민족 이기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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